내 일본어가 부끄러워서 말을 아끼는 분께

받아일 · 2026년 7월 20일 · 3분 읽기

이자카야에서 동료들 대화 곁에 컵만 쥐고 앉아 있는 애니메이션 속 사람

일본어로 대화하는 자리에서 말을 아끼게 만드는 걱정이 둘 있어요. 내 발음이 어색하다는 생각, 그리고 한국식 일본어가 튀어나올까 하는 걱정이요. 둘 다 겪어 봤는데 실제로 제 대화를 막은 건 그 둘이 아니라 말을 안 하고 넘긴 시간이었어요.

일본어 발음에서 뜻을 가르는 건 길이예요

일본어 발음은 한국인에게 쉽다고들 해요. 반은 맞아요. 낱소리 대부분이 한국어에도 있는 소리라 흉내는 금방 나요. 그런데 소통이 갈리는 자리는 낱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길이예요.

일본어는 한 박자를 늘이느냐 마느냐로 낱말이 갈려요. おばさん은 아주머니고 おばあさん은 할머니예요. あ를 한 박자 더 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다르지 않아요. ビル는 빌딩이고 ビール는 맥주예요. きて는 “와요”고 촉음이 들어간 きって는 우표고요.

한국어에는 길이로 뜻이 갈리는 짝이 사실상 없어요. 그래서 한국어로 조율된 귀는 그 한 박자를 흘려듣고, 입도 그 한 박자를 안 늘여요. 낱소리를 다 맞게 내고도 할머니 얘기가 아주머니 얘기로 전달되는 게 이 지점이에요. 다행인 것도 있어요. 촉음은 한국어 쌍시옷을 낼 때의 그 준비 동작과 비슷해서, 한국인은 감을 금방 잡는 편이에요.

혼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이 길이 감각이 고약한 게, 혼자서는 늘었는지 확인이 안 돼요. 녹음해서 들어 봐도 내 귀는 내 의도를 알아서 관대하게 채점해요. 맞았는지는 상대가 알아들었는지로만 판정돼요. 채점자가 나여서는 안 되는 과목인 거예요.

그래서 순서를 뒤집는 게 맞아요. 발음이 완성된 다음에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면서 발음이 다듬어져요. 흘린 한 박자는 상대의 え?가 그 자리에서 잡아 주고, 통한 발음은 대화가 이어지는 걸로 확인돼요. 밖에서 발음만 다듬는 건 물에 안 들어가고 수영 자세를 교정하는 일이에요.

한국식 한자어는 셋 중 하나예요

한자어 걱정도 실제로 대화해 보면 셋 중 하나인데, 그중 둘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냥 통하는 것들. 한국어 한자어의 상당수가 일본어와 뜻이 같고 소리도 비슷해요. 약속은 約束, 준비는 準備, 회의는 会議예요. 이런 낱말은 발음이 어림이어도 문맥이 있으면 통해요. 멈칫하지 말고 문장을 하나 더 말하는 게 나아요.

귀엽게 틀리는 것들. 한국에서만 쓰는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읽어서 없는 말을 만들 때가 있어요. 상대가 갸웃하면 한국에선 이런 뜻이라고 설명해 주면 되고, 그 얘기 자체가 대화 한 토막이 돼요. 제 경험상 일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흥미로워해요.

진짜 조심할 몇 개. 뜻이 다르게 박혀서 오해를 만드는 소수만 챙기면 돼요.

  • 愛人: 한국에선 연인이지만 일본어 愛人은 남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관계, 그러니까 불륜 상대예요. 연인은 恋人이에요.
  • 工夫: 공부가 아니라 궁리한다는 뜻이에요. 공부는 勉強예요.
  • 八方美人: 한국에선 다재다능하다는 칭찬인데 일본에선 누구에게나 잘 보이려는 줏대 없는 사람이라는 흉이에요.

이 정도만 피하면 나머지 한자어는 사고를 안 쳐요.

그래서 오늘 그냥 말하시면 돼요

일본 사람들은 외국인의 일본어에 관대한 편이에요. 몇 마디만 해도 日本語お上手ですね가 돌아와요. 그 칭찬이 민망하다는 분도 있는데, 뒤집으면 서툰 문장을 아무도 흉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걱정하던 발음이 실제로 문제였던 경우도 생각보다 적어요. 받아일 통화에서 발음을 먼저 지적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예요. 못 알아들으면 되묻고, 무슨 말이었는지 맞혀 보고, 통화가 끝나면 흔들렸던 낱말을 리포트에 남겨요. 그렇게 몇 통 하고 나면 대부분은 “생각보다 잘 통하네”로 끝나요.

완벽한 일본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통하는 일본어를 오늘 쓰는 쪽이 도착도 빨라요. 통했으면 그건 이미 일본어예요.

말이 길었네요
3분이면 아실 텐데

가입도 카드도 없이, 전화 한 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