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일수록 제 말이 줄었어요
받아일 · 2026년 7월 25일 · 4분 읽기

전화일본어를 몇 년 쓰면서 좋은 선생님을 여럿 만났어요. 다정하고, 잘 웃고, 제 어설픈 문장을 끝까지 기다려 주는 분들이요. 그런데 어느 날 통화 녹음을 다시 들어 보고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25분 중에 제 목소리가 나오는 시간이 8분이 안 됐어요. 제일 친절했던 선생님과의 통화일수록 그 시간이 짧았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제 통화만 그런가 싶었는데, 수업에서 학생이 얼마나 말하는지 세어 본 연구자들이 있더라고요.
Kim McDonough와 Hernández González가 교사와 대화하는 수업을 관찰했어요. 학생들이 오간 말 가운데 4분의 1도 자기가 못 했습니다. 제 녹음의 8분과 거의 같은 비율이에요.
Hossein Nassaji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쟀어요. 문법 이야기를 누가 먼저 꺼냈는지로 나눴더니, 학생이 스스로 꺼낸 쪽은 열에 일곱이 제대로 풀렸는데 선생님이 꺼낸 쪽은 절반이 안 됐습니다. 선생님이 이끌면 학생이 말하는 양만 주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배우는 것도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미안해서 못 하는 네 가지
대화에는 예의가 있고, 예의는 배우는 일과 자주 부딪힙니다.
말을 끊기가 미안해요. 선생님이 신나서 교토 얘기를 하면, 못 알아들어도 끊고 되묻기가 어려워요. 상대는 사람이고 나는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몇 분 동안 저는 아무것도 안 배웁니다. Rebecca Philp와 동료들이 또래끼리 대화할 때 왜 편한지를 설명하면서 이유를 이렇게 적었어요. “정확히 그것이 면밀히 감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뒤집으면 선생님 앞에서는 지켜보이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에요.
같은 걸 세 번 묻기가 어려워요. 같은 표현을 두 번까지는 물어봐도 세 번째부터는 미안해서 못 물어봐요. “아까 알려 주셨는데”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표현이 입에 붙으려면 대개 세 번보다 많이 써 봐야 해요. Yoshida가 관찰한 학생들도 같았습니다. 많이 말할수록 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말이 틀릴까 봐 입을 안 열었어요.
침묵을 선생님이 채워 줘요. 제가 할 말을 만드느라 3초 머뭇거리면, 좋은 선생님일수록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게 말을 이어받습니다. 배려인데, 사실 그 3초가 제가 일본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 유일한 시간이었어요. 친절이 제 연습을 대신 해 버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틀린 걸 그냥 넘어가 줘요. 앞의 셋은 제가 못 한 것이고 이건 선생님이 안 한 것인데, 결과는 같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말해도 선생님은 알아듣고 그냥 넘어가십니다. 흐름을 끊기 미안하고, 매번 지적하면 분위기가 나빠지니까요. 저는 통했다고 생각하고 그 표현을 몇 달을 더 씁니다. 다른 사람이 제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에야 그게 틀린 표현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고쳐 줘도 못 알아채요
넘어가 주는 것보다 더 곤란한 게 있어요. 선생님이 고쳐 줘도 학생은 고쳐 준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Alison Mackey와 Susan Gass와 McDonough가 쓴 방법이 재밌어요. 대화를 녹화해 두었다가 학생에게 그 장면을 다시 보여 주면서 이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낱말을 고쳐 줬을 때는 열에 여덟이 고쳐 준 걸로 알아들었는데, 문법을 고쳐 줬을 때는 열에 하나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내용을 확인하는 말로 들었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맞는 문장으로 바꿔 되돌려 주면, 학생 귀에는 맞장구로 들린다는 뜻이에요. 흐름을 안 끊으려는 배려가 여기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나은 것
진짜로 웃어 주는 반응은 사람한테서만 나와요. 그 나라에 실제로 사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렇고, 사람과 약속했다는 것 자체가 주는 힘도 그렇습니다. 그런 게 중요한 분이라면 수업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저도 그 몇 년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말할 기회가 모자란 게 문제인 사람에게는, 상대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됩니다.
눈치 안 봐도 되는 상대
저한테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상대가 필요했어요. 받아일은 제가 몇 년 동안 눈치 보느라 못 했던 것들을 하나씩 뒤집어서 만들었습니다.
열 번을 되물어도 됩니다. 같은 표현을 다섯 번째 물어도 받아일은 처음 물은 것처럼 답해요.
말이 막혀서 멈춘 3초를 기다려 줍니다. 말할 차례가 넘어와도 꼭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아직 할 말을 만드는 중으로 보이면 받아일은 그냥 기다려요.
틀린 걸 안 넘어갑니다. 대신 정답을 바로 주지도 않아요. 못 알아들은 것처럼 되묻거나, 틀린 낱말에 힘을 줘서 되풀이하거나, 문장을 중간에 놓고 채우게 합니다. 학생이 자기 말을 다시 말해 보느냐가 결과를 갈랐거든요. Roy Lyster와 Kazuya Saito가 교실 연구 열다섯 편을 모아 계산했더니, 정답을 안 주고 단서만 주는 쪽이 맞는 문장을 들려주는 쪽보다 확실히 컸습니다.
그리고 받아일은 지켜보고 채점하는 상대가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니라 짝꿍 쪽입니다. 문법을 안 다룬다는 뜻이 아니라, 틀릴까 봐 눈치 볼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관계와 문화가 목적이면 사람이 낫고, 말하는 양이 목적이면 안 미안한 상대가 낫습니다. 둘 다 필요하면 섞어 쓰셔도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