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전화가 일본어의 최종 보스인 이유

받아일 · 2026년 4월 17일 · 2분 읽기

사무실 책상 위에서 울리는 전화기

일본어 좀 한다는 사람도 일본 거래처 전화가 울리면 잠깐 멈칫해요. 메일로는 유창한 사람이 전화만 오면 옆자리에 눈짓을 보내요. 한자 문화권이라 읽고 쓰는 쪽은 어떻게든 되는데, 전화가 유독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런지 보면 회화 연습을 어디서 해야 하는지도 같이 보여요.

전화가 어려운 건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에요. 기댈 데가 하나도 없어서예요.

만나서 얘기하면 표정과 손짓이 있어요. 못 알아들어도 상대 얼굴을 보면 절반은 짐작이 돼요. 화상 통화에는 화면과 채팅창이 있어요. 메일에는 시간이 있어서 세 번 고쳐 쓸 수 있고요. 전화는 소리밖에 없어요. 그것도 지금 지나가는 소리요. 놓친 단어를 눈치로 메울 길이 없고 문장을 다듬을 3분도 없어요.

숫자하고 이름에서 특히 많이 틀려요. 1(いち)과 7(しち)은 만나서 얘기하면 표정만 봐도 확인이 되는데 전화에서는 소리로만 갈라야 하거든요. 일본 사람들이 전화에서 7을 굳이 なな로 바꿔 읽거나, 들은 내용을 復唱します 하고 그대로 되읽는 이유예요. 그들도 전화를 안 믿어요. 전화란 원래 그런 물건이에요.

그런데 전화가 제일 어렵다는 그 사실을 뒤집으면 얘기가 달라져요.

제일 어려운 자리가 제일 좋은 훈련장이에요. 모래주머니 차고 뛰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소리 하나로 20분을 주고받는 힘이 생기면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나 화면을 같이 보는 화상 회의는 오히려 쉬워져요. 저는 전화로 회화를 몇 년 하고 나서 화상회의가 편해졌는데, 회의 실력이 는 게 아니라 회의가 쉬워 보이게 된 거였어요. 기준점이 옮겨진 거죠.

그래서 업무 전화가 무서운 분께 드리는 제안은 좀 역설적이에요. 전화를 피하지 말고 틀려도 아무 손해가 없는 전화부터 받아 보세요. 틀려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못 알아들어도 다시 물어보면 되고, 침묵이 3초 흘러도 거래가 깨지지 않는 전화요.

거래처 전화는 실전이라 연습이 안 돼요. 실전에서 처음 겪는 것과 백 번 겪어 보고 가는 건 다르니까요.

말이 길었네요
3분이면 아실 텐데

가입도 카드도 없이, 전화 한 통입니다.